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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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의 수상 경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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월드시리즈 우승 반지









파일:MLB Logo.pn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
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(필라델피아 필리스, 1915년)
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(필라델피아 필리스, 1916년)
파일:MLB Logo.pn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
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(필라델피아 필리스, 1915년)
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(필라델피아 필리스, 1916년)
파일:MLB Logo.pn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
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
(필라델피아 필리스, 1920년)


필라델피아 필리스 No. P
그로버 클리블랜드 "피트" 알렉산더
(Grover Cleveland "Pete" Alexander)
출생
사망
국적
출신지
네브래스카 주 엘바
포지션
투타
우투우타
소속팀
목차
1. 개요2. 선수 경력3. 은퇴 이후4. 명예의 전당 통계(Hall of Fame Statistics)5. 여담6. 관련 문서

1. 개요 [편집]

선수 시절 통산 기록

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대투수로, 통산 3회의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가졌으며 역대 다승 3위[1]에 올라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명. 흔히 이름이 애칭인 Old Pete와 섞여서 피트 알렉산더로도 불린다.

2. 선수 경력 [편집]

어린 시절 법조인이 되라고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통째로 가져다가 붙여줬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야구에만 맛을 들였던 알렉산더는, 마이너리그 시절 주루 플레이 중 유격수가 던진 공을 맞고 기절했다가 야구를 포기할 뻔 했다.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 공이 두 개로 보였을 정도였다고(...).

파일:external/image1.findagrave.com/1812_124027651601.jpg

다행히 이 문제가 해결된 뒤, 그는 750달러의 이적료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한다. 그리고, 전설이 시작되었다. 데뷔 첫 해부터 그는 리그 다승왕과 31완투를 거두며 최다 이닝 투수의 영예를 안았고 MVP 투표에서 3위에 오른다. 그 뒤로 매년 20승~30승 가까이 거둬주는[2] 필리스의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데드볼 시대에 내셔널리그를 주름잡는 최강의 에이스로 입지를 다졌다.

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시카고 컵스로 팔린 그는 1918년 단 세 경기만 치르고 군에 입대해 유럽으로 갔다. 그리고 그가 팔려간 이후 필리스의 성적에 대해서는...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.

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알렉산더는 프랑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. 악명 높은 참호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포격의 공포를 감당해야만 것. 이 포격을 통해 알렉산더는 왼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었으며, 오른쪽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됐다. 또한 그의 밥줄인 오른팔에도 부상을 입었다. 게다가 전쟁에서 돌아온 알렉산더는 본격적으로 간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.[3][4] 또한 알 수 없는 공포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왔다. 이쯤되면 PTSD가 따로 없다. 원래 애주가 집안이었던 알렉산더는 이 때부터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.[5]

파일:external/bioproj.sabr.org/AlexanderPete.jpg
이처럼 힘든 시간을 겪고서 군대에서 돌아온 뒤, 그는 다시금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는 등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가 듯 했다. 그런데 때마침 시작된 라이브볼 시대에 의해 실점이 늘어났고, 탈삼진 능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. 그렇게 데드볼 시대의 에이스는 잊혀지는가 했다.

파일:external/3.bp.blogspot.com/1992+Conlon+Collection+%2523630+Grover+Alexander.jpg
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된 알렉산더는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20⅓이닝 동안 17K를 잡아내는 활약으로[6]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한다. 이 때의 활약을 자세히 풀어보면 2차전에서 2실점 완투승, 팀이 2승 3패로 몰린 6차전에서 다시 2실점 완투승, 7차전 7회부터 등판해 마무리까지 던졌다. 현대로 치면 2014년 매디슨 범가너급의 특급활약을 퇴물이 다 됐다는 평을 듣던 투수가 해낸 것이다. 더군다나 알렉산더는 정규시즌 200이닝 가량을 던지면서 삼진은 47개 밖에 잡지 못했었다.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생각나는 활약이라고 할 수 있다.

이후 1927년 다시 21승 2.52 ERA 시즌을 보낸 알렉산더는 1930년 필리스로 복귀하여 한해를 보낸 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물러난다.

3. 은퇴 이후 [편집]

1938년,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3년차에 80.92%의 득표율로 쿠퍼스타운에 입성했다. [7][8]

은퇴한 이후 그는 순회 야구단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으며, 최고의 투수로 활약하며 모았던 돈을 술값으로 탕진했다. 간질알코올 의존증이 결국 그의 인생을 망친 것이다. "명예의 전당에 헌액된건 자랑스럽다. 그러나 명예의 전당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."라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고.

1950년 11월 4일 그는 고향 네브래스카주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.

파일:external/www.baseball-almanac.com/grove_alexander_grave.jpg

4. 명예의 전당 통계(Hall of Fame Statistics) [편집]

블랙잉크
그레이잉크
HOF 모니터
HOF 스탠다드
피트 알렉산더
130
342
257
77
HOF 입성자 평균
40
185
100
50
  • JAWS - Starting Pitcher (5th)
career WAR
7yr-peak WAR
JAWS
피트 알렉산더
120.0
69.6
94.8
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
73.9
50.3
62.1

5. 여담 [편집]

6. 관련 문서 [편집]



[1] 크리스티 매튜슨과 공동 3위인 373승. 1위는 512승의 사이 영, 2위는 417승의 월터 존슨[2] 1914~17 4년 연속 다승왕에 올랐다.[3] 이는 마이너리그 시절 머리에 공을 맞은 충격에 기인한다.[4] 이러한 간질 발작은 후술한 알코올 중독과 겹쳐 마운드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알렉산더에 대한 술주정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.[5]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 참조.[6] 또한 베이브 루스끝내기 도루실패가 결정적이었다(...).[7] 월터 존슨에 이어 사이 영과 역대 2위를 다투는 대투수임에도 3년 차에 낮은 득표율로 입성한 이유는 알코올 중독의 이미지 탓이 컸던 듯 하다.[8] 라고 적혀 있으나 그 사이 영도 2년 차에 75%를 겨우 넘겨 헌액되었다. 명예의 전당 초창기에는 대선수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. 통산 타율 2위의 대타자 로저스 혼스비는 5년차 78%,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 그로브도 4년차 76%다. 1936년의 First Five를 제외하면, 첫 해 헌액은 1962년의 밥 펠러와 재키 로빈슨이 처음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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